들어가며

하이퍼커넥트는 전 세계 사람들을 서로 연결해 사회적·문화적 가치를 창출합니다. 2014년 설립 당시 영상 플랫폼 시대가 오리라는 것을 미리 예측하고 실시간 영상 커뮤니케이션 기술에 주목, 시행착오 끝에 세계 최초로 모바일에서도 사용 가능한 WebRTC를 개발해 상용화하는 데 성공한 바 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탄생한 대표 서비스 ‘아자르’는 지연시간 없는 모바일 영상 커뮤니케이션 환경 속에서 스와이프 한 번만으로 전 세계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등 차별화된 기술을 통해 전 세계 이용자들을 매료시켰습니다. 이는 곧 우리에게 낯설었던 MENA(Middle East and North Africa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에서의 인기로까지 이어졌으며, MENA 지역은 현재 북미, 유럽, 아시아 등과 함께 ‘아자르’ 주요 인기 국가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글은 그동안 하이퍼커넥트의 글로벌 런칭 경험 중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MENA 지역에서의 출시 및 대응에 대해 다룹니다.

MENA 지역 간단 정리

MENA-Map 중동-북아메리카 지역 지도 (파란색: 일반적 의미의 MENA 지역 범위, 하늘색: 넓은 의미)

대한민국 vs MENA 간단 통계[1]

비교항목 대한민국 MENA
면적 (평방 km) 10만 665만
인구 5천만 2.3억
평균 연령 (만) 42세 28세
연간 인구 증가율 0.5% 1.7%
남녀 성별 비율 1.1:1 1.4:1
종교 기독교(31.6%), 불교(21.4%) 이슬람(89%), 기독교(8%)
1인당 GDP(US$)[2] 36,500 42,600(산유국 71,000, 북아프리카 12,100)
유선 인터넷 보급률 87% 61.5%
1인당 모바일 회선 가입수 1.2 1.8
  1. 이라크, 시리아, 예멘, 리비아, 소말리아 등 정치 불안정 국가는 통계 왜곡을 방지하고자 제외했습니다.
  2. 이란, 이스라엘은 아랍 국가가 아니므로 평균에서 제외했습니다만,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중요한 주제인 오른쓰기(RTL) 문제를 포함하는 국가입니다.
  3. 터키는 중동이지만, 아랍 국가가 아니므로 역시 통계에서 제외했습니다.

이 통계를 종합하자면, 젊은이들이 모바일 인터넷을 활발하게 사용하는 지역이 바로 MENA 지역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특히 회선 가입수가 1인당 2에 가깝다는 것이 바로 이 결론의 강한 근거입니다. 그런데 주석을 자세히 보시면, 중동 이지만 ‘아랍’ 이 아닌 국가들도 있고, 흑인들만 있을 것 같은 아프리카가 아랍 문화권에 일부 포함된다는 것도 의외며, 중동 하면 모두 이슬람이란 생각과 달리 의외로 기독교의 비율이 제법 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현상을 좀 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 다음엔 ‘아랍’ 이란 무슨 개념인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중동 ≠ 아랍, 아랍 ≠ 무슬림

아랍 문화권이란 서아시아 및 북아프리카에 살며 아랍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문화권입니다. 즉, 아랍 문화권을 정의하는 가장 큰 기준은 언어입니다. 이 때문에 이슬람을 믿으며, 심지어 아라비아 글자를 사용함에도 아랍어를 사용하지 않는 국가는 아랍 문화권에 속하지 않습니다.

한국어를 표기하는 주요 수단이 한글 뿐인 한국인 입장에서는 잘 이해되지 않는 말입니다. 그러나 굳이 비교하자면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 족이 쓰기 체계로 한글을 도입했다 하여 이 사람들이 한국 문화권도, 한국인도 아닌 경우와 비슷합니다. 우리 눈에는 똑같은 죄다 꼬부랑 글자를 쓰는 이란 같은 경우, 아랍 글자를 사용하지만 페르시아어를 쓰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중국의 위구르 지방에서는 아랍 글자를 사용하지만 이들의 언어는 중국어와 위구르어입니다. 로마 알파벳을 쓰는 수 많은 국가들이 모두 영어를 쓰는것은 아니란 것도 좋은 예가 될런지 모르겠습니다.

요약하자면, 아랍 문화권을 정의하는 가장 큰 기준은 바로 아랍어입니다. 아랍어 화자 대부분이 이슬람을 믿기 때문에, 아랍 문화 = 이슬람이란 착각을 하시는 분들도 간혹 있지만, 이슬람을 믿지만 독자 문화를 이루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같은 나라들을 아랍 국가라고 정의하지는 않습니다. 이 글에서 다루는 MENA 국가들은 모두 아랍어를 공용어로 쓴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물론 국가별 사투리가 있어 언어가 완전히 상호 호환되진 않지만, 대표 아랍어의 기준을 화자가 가장 많은 이집트(9000만)로 잡으면 큰 문제는 없습니다. 실제로 구글의 공식 디바이스인 넥서스, 픽셀 시리즈가 이 기준을 따르고 있기도 합니다.

지역 서비스 개발 시 고려해야 할 문화 차이

RTL? LTR?

앞서 아랍 문화권이란 아랍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문화권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아랍어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글자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써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아래 두 그림을 비교하면 쉽게 이해되실 겁니다.

LTR-vs-RTL LTR 과 RTL 표기법으로 본 위키피디아 화면. 글자 뿐 아니라 그림의 순서까지도 모두 반대인 것에 주목.

오른쪽부터 글을 써 내려가는 방식이 상당히 낯설다 생각하실 분도 계실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RTL 국가였습니다. 아래 그림을 볼까요?

독립신문 독립신문 창간호

위 그림에서 보듯 중국에서 한자가 전래한 이래, 한국은 쭉 RTL 문화권이었습니다. 다만 광복 이후 현대 대한민국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미국의 영향으로 인해 현대 대한민국은 대부분의 표준을 미국에서 채용했습니다. 서법 또한 이 때부터 바뀌었습니다. 이렇듯, RTL(Right To Left), LTR(Left To Right)이란 굳이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우좌쓰기(右橫書), 좌우쓰기(左橫書)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단순한 개념입니다.

다만, 간단한 개념 설명과 달리 서법의 차이는 사람의 정신 세계와 행동 양식, 습관 등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아랍인들의 RTL 서법은 서기 약 350년경 수립되었고, 한국어 정서법의 역사는 100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과 우리는 거의 1700년에 가까운 정서적, 문화적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주요한 차이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아랍 사람들이 문자를 접할 때 의식의 흐름 및 중요성은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흘러간다. 따라서 오른쪽에 있는 정보일 수록 중요도가 높다.
  2. 책을 읽을 때 의식의 흐름이 끝나는 왼쪽 끝에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간다. 이로 인해 제책 방식 또한 오른쪽에서 왼쪽이다.
  3. 오른손잡이가 글자를 쓰면 손이 쉽게 더러워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왼손잡이가 많다.
  4. 현대 아랍어 서법에서는 전통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각종 문장부호 및 구두점, 숫자 등이 포함될 경우 기준 문자를 정해 방향을 바꿔 읽는다.

3번은 일본 만화책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4번은 양방향 글월쓰기(Bidirectional text, BiDi text)라는 규칙인데 말로 써 놓아도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또한 그 규칙은 복잡하기 때문에 다음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따라서, UI 요소 배치에 정리한 차이점들을 살린다면 아랍 문화권 사용자들에게 좀 더 좋은 사용성을 주는 화면을 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정보의 중요도 순서 강조: 기능을 강조하기 위한 [아이콘][텍스트] 화면은 [텍스트][아이콘] 형태로 정렬한다.
  2. 왼손잡이가 많다는 특징: 확인 또는 취소를 묻는 상호작용 화면에서는 긍정적인 버튼을 왼쪽에, 부정적인 버튼을 오른쪽에 둔다.
  3. 의식의 흐름 방향 존중: 과거 이력(History) 등을 View Pager 등으로 표현하는 페이지는 오른쪽일수록 오래된 자료가, 왼쪽일 수록 새로운 자료가 위치하도록 자료 정렬 기준을 잡는다.

숫자와 구분자

우리가 쓰는 숫자(0123456789) 는 아라비아 숫자라고 익히 교육받아 왔습니다. 그런데정작 아랍 문화권에서는 아라비아 숫자를 쓰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싶으실 겁니다.

사실 우리 눈에 익숙한 숫자 체계는 정확히 말하자면 인도아랍 숫자(Hindu Arabic numeral)라 합니다. 전통적인 아랍 숫자는 모양이 비슷한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습니다. 아래 표를 살펴볼까요?

문자체계 1 2 3 4 5 6 7 8 9 0
인도아랍 숫자 1 2 3 4 5 6 7 8 9 0
아랍 숫자 ١ ٢ ٣ ٤ ٥ ٦ ٧ ٨ ٩ ٠
페르시아(이란) 숫자 ١ ٢ ٣ ۴ ٥ ۶ ٧ ٨ ٩ ٠
동아시아 숫자 零/〇

아랍 숫자는 우리 눈에 익숙한 모양이 아니라 처음엔 당혹스럽습니다만 모양을 잘 살펴보면 4, 6, 7, 8만 좀 주의하면 의외로 쉽게 외울 수 있습니다. 다만 주의할 점은, 글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씀에도 숫자는 우리처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다는 사실입니다. Wikipedia 에 있는 카이로 시계 사진을 살펴봅시다.

Clock-in-Cairo 카이로 역 시계

우리 눈에 그나마 익숙한 10 이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LTR)로 씌여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아랍인들은 좌횡서, 우횡서 오류에 비해 숫자 표기 오류에는 비교적 관대한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또한, 젊은 세대들은 전통적인 아랍 숫자보다는 인도아랍 숫자 표기를 더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제공하는 서비스의 대상 청중의 수준에 맞춰 융통성을 발휘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숫자 이야기가 나온 김에, 아랍 문화권의 숫자 구분자 형식 또한 우리와는 상당히 다르단 점도 덧붙이고 싶습니다. 동양 문화권은 전통적으로 만 단위로 숫자를 나누는 경향이 있고 구미권은 천 단위로 숫자를 나누는 경향이 있습니다. 긴 숫자를 적을 때 가독성 편의를 위해 구분자를 붙이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 구분자의 형식 또한 우리와는 상당히 다릅니다. 아래 표에서 간단히 비교해 봅시다.

  한국어 영어(미국/영국) 아랍어 인도네시아어 프랑스어
숫자 4,294,967,295.00 4,294,967,295.00 ٤٬٩٢٤٬٩٦٧٬٢٩٥٫٠٠ 4.924.967.295,00 4 924 967 295,00
읽기 42억 9496만 7295 4B 294M 967T 295 4.924.967.295,00 4E 924J 967R 295 4B 294M 967T 295
  1. 인도네시아어, 프랑스어는 또 다른 참고 예시를 위해 추가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미국식 표기를 도입해와 천 단위에 콤마(,), 소숫점 자리에 피리어드(.) 를 찍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반면 아랍 지역의 구분자는 상당히 다르며 그들이 인도아랍 숫자를 읽을 때에는 천 단위에 피리어드(.) 를, 소숫점 자리에 콤마(,) 를 두고 읽습니다. 이렇듯 숫자 포맷팅은 상당히 복잡한 규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0.000" 따위의 포맷을 파싱하는 로직을 구현하기 보단 시스템이 기본적으로 제공해 주는 숫자 파싱 API 를 사용하는 편이 여러 모로 이롭습니다.

숫자를 다룰 땐 신중해야 합니다. 특히 결제와 같은 서비스를 제공할 땐 더욱요. 잘못된 방향으로 숫자를 쓸 경우 매출같은 중요 지표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거든요. 그리고 부끄럽지만 이 자리를 빌어 고백하자면 필자도 과거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랍 숫자라는 도메인 지식 부족으로 인한 대형 사고였죠. 물론 아랍 사람들은 Broken RTL 에 익숙하기 때문에 백만원을 KRW 1,000,000 라 적었다 해서 유효하지 않은 숫자를 6개나 쓴 1원이라 읽지는 않습니다만, 그들에게 좀 더 좋은 서비스 경험을 제공하려면 이런 사소한 부분도 놓치지 않아야겠죠?

서력 21세기 = 이슬람력 15세기

앞서 아랍 사람들이라 해서 모두 이슬람을 믿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랍 지역 인구의 85% 이상이 이슬람 신자기 때문에 그들 문화의 많은 부분은 이슬람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앱 개발자가 특히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은 바로 달력입니다.

아랍 지역에서 사용하는 달력은 이슬람교력 혹은 헤지라력이라고 하며 이 달력은 서기 622년 7월 16일을 그 기준으로 삼습니다. 이슬람력 1월 1일은 바로 선지자 무함마드가 신의 계시를 받고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한 그 날을 가리킵니다. 또한 이 달력은 음력을 기준으로 작성되기 때문에 우리가 쓰는 서력과 차이가 꽤 크며 이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매우 복잡한 윤년 규칙과 윤달 규칙이 있습니다.

제가 장황하게 이슬람 달력 이야기를 하는 이유를 눈치가 빠른 분들은 벌써 알아차리셨을 겁니다. 바로 이용자의 연령이 중요한 서비스를 구현할 때 이 달력의 차이는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그들의 달력도 연, 월, 일 개념을 포함하기에 날짜 변환 없이 입력받은 날짜를 그대로 사용하게 되면 30세와 708세 이용자가 공존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게 됩니다. 제가 Java/C# 개발자다 보니 다른 언어의 유틸리티는 잘 모릅니다만, 다행히도 Java 에는 java.time 패키지가, .NET 에는 System.Globalization.Calendar 클래스의 상속 구현체들이 있어 우리가 사용하는 율리우스-그레고리안 달력으로 쉽게 변환할 수 있습니다. java.time 을 쓸 수 없는 환경에서는 Joda-Time 을 써도 되고요.

라마단

라마단은 이슬람 신앙과 관련된 절기입니다. 그러므로 아랍 문화권은 아니지만, 이슬람이 제1 종교인 국가들에는 모두 해당합니다. 한국과 비교적 가까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에서도 라마단은 상당히 중요한 기간으로 취급합니다.

라마단이란 선지자 무함마드가 쿠란을 계시받은 것을 기념하는 달이며 이슬람력으로 9월에 해당합니다. 라마단 기간동안 이슬람 신자들은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일체 금식하며, 독실한 신자는 물조차도 마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렇듯 라마단은 극기의 기간이기에 서비스 운영 지표에 매우 큰 영향을 주므로, 운영 지표 분석시 이런 문화적 차이가 있다는 점도 꼭 알아두시면 좋겠습니다.

다만 문제는 이슬람력은 앞서 설명드렸다시피 음력이기 때문에 우리 기준으로는 정확한 날짜를 알기 매우 어렵습니다. 다행히도 인터넷에는 올해의 라마단 시작과 끝을 알려주는 사이트들이 많으니, 매 해 시작때마다 올해의 라마단 기간을 미리 숙지해 두는 것도 서비스 운영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맺으며

지금까지 MENA 지역과 우리의 문화적 차이를 최대한 짧게 요약해서 설명해 드렸습니다. 다음에는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는 기술적 해법 및 어려움을 주제로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참고자료

  1. The World Factbook, CIA, 2015
  2. World Economic Outlook Database, IMF, 2015
  • 본문에 사용한 이미지는 모두 Wikimedia commons 에서 발췌했습니다.